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런던 대화재 (문단 편집) == 화재 이후 == 이 사건 이후로 런던 중심지는 완전히 새로운 계획 도시로 세워졌고 석재 건축법이 생기고 [[유럽]] 최초로 화재를 담당하는 소방 조직과 [[소방차]](마차), 화재 [[보험]]이 만들어지게 되었다. 당시 런던의 소방 시스템은 국가 소방 체계가 아니라 민간인들이 얼마씩 각출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민영 소방 체계였는데 그 빵집이 출자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소방업자들이 출동하지 않아 화재가 크게 번졌다. 화재로 민심이 흉흉해진 가운데 울화의 대상은 [[외국인]]과 [[가톨릭]] 교도에게로 돌아갔고 분노한 대중은 이게 다 [[프랑스인]], [[네덜란드인]] 가톨릭 교도[* 그런데 정작 네덜란드는 개신교 국가였다...] 때문이라면서 거리에서 무차별 폭행했다. 당시 국왕인 찰스 2세는 시민의 분노가 왕실로 향할까 봐 사실상 폭동을 방치했고 화재 범인으로 프랑스인 시계공 로베르 위베르가 잡혀 고문 끝에 자기가 범인이라고 실토했으나, 사실 그는 화재 발생 이틀 뒤에 런던에 도착했고 이 사실은 그가 사형당하고 나서야 알려졌다. 이 사건이 있고 200년 뒤에도 사건 애도 추모비에 '이게 다 가톨릭 교황 때문이다'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고 하고 300년이 지난 1986년에야 실제로 화재 원인을 제공했던 빵집 주인의 후손이 사과하며 사건이 일단락되었다. 그리고 몇 세기가 지난 후, 일본의 [[관동대지진]]에서도 이 누명이 재현되고 만다. 발화지점인 런던 푸딩레인에는 현재 대화재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, [[런던 지하철]] Monument역에서 내리면 된다. 지하철역 이름인 Monument가 바로 런던 대화재 기념비를 뜻하는 말이다. [각주]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런던, version=774)] [[분류:영국의 화재]][[분류:런던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